20대 때부터 했던 직업에 대한 고민을 30대 후반인 지금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릴 적부터 꿈이 없어 그런가.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었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공부할 형편이 안되어서 대학교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비만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면 되었다.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주방일은 쉽게 구할 수 있어 레스토랑, 케이터링, 카페 등에서 알바를 했다. 주방에서 일한다는 것은 몸은 힘들지만 재밌고 마음이 편했다. 요리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에 해외에 가서 요리학교 1년 코스를 밟고, 풀타임으로 1년 일하면서 영주권을 땄다. 그렇게 내국인 학비를 내며 하고 싶었던 전공 공부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형편은 어려웠지만 해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요리로 알바를 하며 부모님 도움없이 생활비 및 약간의 학비를 벌며 공부할 수 있었다. 물론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말이다. 한 번은 동시에 3개의 레스토랑, 카페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나의 20대는 치열하게 공부하며 주방에서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공부하면서도 '그냥 요리를 직업으로 하며 살까?'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렇지만, 학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계속 공부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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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공부는 대학교때 만난 짝꿍과 함께 해외에서도 계속 이어졌고, 짝꿍은 지금 교수가 되었다. 함께 시작한 박사과정을 나는 1년 차에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연속된 실패를 경험했다. 박사 1년 차에 그만두고, 한국 약사 PEET 시험공부를 했다. 약사 입시 시험만 3년을 투자했는데, 세상엔 지독하게 노력하는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확실히 느끼며 포기했다. 1년 차에 더 빨리 포기했어야 했는데, 짝꿍과 가족만 희생시키고 2년 더 공부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박사 포기, PEET 포기로 약 4-5년의 세월을 흘려 보내는 동안 짝꿍이 미국에 취업이 되어 같이 오게 되었다. 나는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아니어서 전업 주부로 지금 3년 차이다. 그러다가 미국에 정착할 마음을 먹고 영주권을 신청하기로 했다. 영주권 신청해서 I-140이 승인되면 EAD를 신청할 수 있고, 승인되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변호사와 진행 중이고 이번 7-8월에는 신청할 수 있을 것 같다. EAD까지 받으려면 앞으로 6개월 정도는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6개월 뒤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래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현실적인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전공으로 잠깐 일은 해보았다. 그치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일을 하는 동안 항상 힘들었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바로 취업이 가능해 보이는 것은 요리사였다. 그동안 파트타임, 풀타임 요리사로 일했던 경력을 써보니 카페, 일식레스토랑, 호텔, 케이터링, 초밥집 등 10년이었다. PEET 1년 차에도 케이터링 업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고, 일을 안 한 기간은 PEET 2-3년 차 한국 언니 집에 머물며 집중적으로 공부한 시기뿐이었다.
요리 말고 계속 눈길이 가는 직업이 하나 있다. 물리치료사이다. 박사 1년차에 그만두고 약사가 아닌 물리치료를 가장 먼저 떠올렸었다. 그런데 당장 물리치료 3년 학비가 만만치 않고, 외국인 졸업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얘기를 극히 들었기 때문에 쉽게 도전할 수 없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PEET 도전이 더 무모했다. 아마도 1년 인강 프리패스 100만 원만 투자하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 + 도피의 마음이 만든 도전 아닌 도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그냥 요리를 했더라면 돈이라도 벌어 학자금을 모두 갚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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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물리치료사는 2년 과정과 3년 과정이 있다. 2년 과정은 물리치료사 보조 (Physical Therapy Assistant, PTA), 3년 과정은 물리치료사 (Doctor of Physical Therapy, DPT)이다. 미국은 물리치료사 DPT가 개원도 할 수 있고, 연봉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물리치료사 직업과 전망 좋은거야 누가 모르겠는가. 현실적으로 내가 해낼 수 있는지가 문제이지. 학사 졸업한 지는 벌써 15년이 되었고, 석사 졸업한 지도 벌써 6년이나 흘렀다. 학위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며 학위나 모으고 있는 고학력 병신이 될까 사실 걱정이 되긴 한다. 또 실패할까 두려움이 있기도 하고.
만약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PTA vs DPT를 고민해 봐야한다. PTA 코스는 2년으로 매년 약 $20,000의 학비가 들고, DPT는 3년으로 매년 약 $30,000의 학비가 든다. 기존의 학자금도 갚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학비를 내며 공부를 해야 된다는 자체가 이기적인 결정인 것 같다. 돈을 떠나 입학만 생각해 보더라도 정원은 매년 20-30명 정도로 작은 규모이고, 미국 의대 지망생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게 물리치료라서 경쟁이 꽤 치열하다고 한다. 그리고 물리치료 시설에서 100시간의 봉사활동 기록이 있어야 기본적인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선수과목 이수도 1년에 걸쳐서 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EAD를 기다리며 100시간의 물리치료 시설 봉사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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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딱히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것저것 하면 기본정도는 하는 정도이다. 미각이 특출나지도 않고, 손이 그렇게 야무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잘 적응하며 일했던 경험이 있어 그런지, 미국에서 요리사로 취업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7년이라는 공백이 있기는 하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튼, 당장 학교를 등록해 공부를 시작할 염치는 없다. 요리사로 취업은 할 것이다. 그리고 EAD 취업비자의 장점이 여러 군데에서 일해도 된다고 하니까 Physical Therapy Aide 혹은 Physical Therapy Tech로 파트타임이라도 일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Physical Therapy Aide/Tech는 물리치료 과정을 듣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단 물리치료 봉사활동 신청했고, 병원에서 일하려면 TB test 결핵검사 받아야 된다고 해서 받아두었다. 공부를 하더라도 돈과 시간을 고려해 DPT 보다는 PTA를 하는 게 나아보여 온캠퍼스, 온라인과 하이브리드 과정을 제공하는 학교에 연락해 학점인정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는 중이다. 알아보는 건 돈 안 드니까.
짝꿍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한다. 10년 뒤 20년 뒤 지금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바람이란다. 나도 마찬가지다. 물리치료하면서 내가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려 한다. 물론 요리하는 삶도 좋다. 법륜스님 '행복' 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이거 안되면 저거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행복하게 사는데 중요하다고 하니. 그런 자세로 앞으로 어떻게 일이 흘러갈지 계속 남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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