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대 후반부터 시작된 거듭된 실패. 30대 후반이 된 나는 지금 반 강제로 전업주부이다.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신분이기 때문. 대학교와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해 했던 알바 경력을 따져보니 해외에서만 주방 경력이 10년이더라. 돈을 벌기 위해 카페, 호텔, 케이터링 업체 등 시간과 페이가 맞으면 거침없이 지원했고, 대부분 내가 맘에 드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냥 해보자, 그냥 하면 되지, 맘에 안 들면 다른 데 가면 되지, 여기 맘에 드는데 꼭 여기서 일하게 됐으면 좋겠다' 등 알바니까 편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물론 일 시작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ISFJ로 헌신하는 타입.
2.
그런데 정작 힘들게 시간과 돈을 투자한 전공분야에는 취업을 하기가 꺼려진다. 준비가 안된 것 같고, 능력이 부족한 것 같고, 그러다보니 심지어 전공분야가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박사 1년 차에 깨달았다. 깨닫고 보니 모두 내가 힘들어하는 성격의 업무들이었다. 하다 보면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더라. 성공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던 그 일이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일처럼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어떤 능력을 쓰고 계발시켜야 할지에 집중한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할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3.
요즘 즐겁게 오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한다. 사실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짝꿍이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고 있고, 심리적으로 내 능력을 발휘하는 직업을 갖도록 지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현재 미국취업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허가를 받으면 당장 뛰어들 수 있는 건 요리. 주방에서 일하는 건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몸이 피곤하겠지만.
바로 지원해볼 수 있는 또 따른 직업은 나의 전공분야로 연구원. 해본 적은 없지만, 여러 군데 지원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막연히 하고 싶은 물리치료사 또는 물리치료사 보조. 이건 다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온라인으로 선수과목 듣고, 봉사활동시간 채우고, 학교마다 에세이 또는 입학시험을 봐야 함. 입학 커트라인이 꽤 높아 선수과목 점수가 중요하다. 학부졸업한 지 오래돼서 선수과목 모두 다시 들어야 한다. 입학도 쉽지 않고,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물리치료사의 길. 안 가본 길이라 막연하게 해보고 싶은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4.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디에서든 내 능력을 발휘해 보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 어디서든 즐겁게 내 능력을 발휘하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만으로는 모르겠다. 결정하기 어렵다. 난 원래 부딪혀보고 경험해봐야 이건 아니구나하며 접는 스타일이라. 두 달 전에 신청해 둔 물리치료실 봉사활동이 드디어 내일부터 시작한다. 가까이 보면서 나한테 맞을지 봐야겠다.
2. 30대후반 전업주부 미국 물리치료실에서 봉사활동
1.요즘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많다. 요리사, 물리치료, 또 다른 직업 등에 대해 생각도 하고 알아보기도 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 나와 비슷한 상황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올초에 미국에 온 3
dotorimj2.tistory.com
일단, 무슨일을 하든 최대한 즐겁게 해 볼 거다. 요리를 하던, 물리치료실에서 일을 하던. 다른 성격의 일을 하던. 아직 취업허가가 나오려면 4-6개월은 더 있어야 한다. 더 고민해 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건 해보고. 사람들 만나서 얘기도 해보고.
5.
요즘 내가 실패해도 계속해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앞에도 말했지만, 나의 실패와 현재의 삶을 이해해주고,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 아주 큰 힘이 되고 있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나의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 그 타고난 기질에 더해 내 힘으로 성공해 본 크고 작은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 노력으로 성취했던 것들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중학교 때 국가대표를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운동해 전국 1위 해본 경험.
고등학교 때 운동 그만두고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할 것 같아 독서실에서 총무가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공부해서 전교 1등 해 본 경험.
대학교 때 동기 셋이서 국토대장정하겠다고 배낭 메고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걸어간 경험 (물론 버스와 배를 타긴했음)
내가 원하는 대학교 들어가 전액장학금 받아 졸업한 경험.
자취하면서 생활비 벌겠다고 이런저런 알바해서 스스로 충당해 본 경험.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해외에 가서 공부와 일하며 살아본 경험.
쓰고 보니 나의 10대 20대는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과거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그러니까 이런 나의 경험들이 20대 후반부터 공부와 실패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직업 없이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내 인생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박사 1년 차에 그만두고, 약학대학입학시험 3년 공부하다 접고, 짝꿍 따라서 미국에 와서 3년째 전업주부인 내가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예전보다는 조심스럽지만 아직 나는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 인생에서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의 자존감이 곤두박질치지 않게 하고, 잠시 우울은 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만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 실패하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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