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30대후반 전업주부 미국취업도전기

11. Rehab tech 한달, 오늘은 숨고 싶은 날

Bella0204 2024. 1. 9.

날이 구리구리해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히 영어가 더 버벅대서 그런가.
초보자의 미숙함을 여러 사람한테 들킨 것 같아 그런가.
오늘은 기분이 심하게 가라앉은 날.


Unsplash Anthony Intraversato


물리치료실 환경 상 함께 일하는 사람도 많고, 하루에 만나는 환자들도 많다. 말도 많이 해야 하고, 말도 많이 들어야 한다.

금요일 오전. 오늘은 좀 바쁜 날이었다. 나포함 2명의 테크니션이 5명의 물리치료사와 1명의 작업치료사를 보조해야 하는 날이었다. 바빴지만 나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래된 환자 한 분에게 기존에 했던 방식이 아닌 다른 운동방법으로 설명하면서 좀 꼬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운동 설명과 방법이 그분의 기분을 얹잖게 한 것 같다. 결국 그분이 다른 물리치료사는 이렇게 안 한다고 말해주었고. 더 불편한 방법으로 안내해서 미안하다. 기존 방식으로 다시 하자. 말해줘서 고맙다. 내가 배우는 중이라 그렇다고 하며 웃으며 마무리는 됐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저 아래로 감. 왜냐면 당황해서 말도 어버버. 쉬운 말인데도 자신 있게 나오지 않음에 스스로에게 너무 한심함을 느꼈달까.

또 한 번은 물리치료사가 담당 환자에게 한 발로 버티기 시키라고 해서 시키는데 3분 동안 30초씩 발 번갈아가며 하라고 시켰는데. 멀리서 3분만 듣고는 와서 3분하면 죽을 거다라며. 1분하고 반대발로 바꾸라고 하며 가버림. 순간 당황하고 바쁘게 가버려서 아무 말도 못 함. 그 후 나도 바빠서 말할 기회를 놓침. 설마 내가 3분 동안 한 발로 서있으라고 했겠는가. 시트에는 30초씩 3번이라고 쓰여있어서 그렇게 한 건데.

그리고 다들 바빠도 여유롭게 수다도 떨고 하는데. 수다에 낄 정신은 없다. 사실 수다가 제일 알아듣기가 힘들기 때문. 그래서 어젠 수다는 낄 생각도 없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좀 외톨이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다행인 건 일 시키는 영어는 잘 알아들음. 여하튼 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오전이었다.

평소에는 종종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데, 오늘은 슬쩍 나가서 혼자 조용히 먹고 왔다. 가까이 마주 앉아 얘기를 할 자신이 없었달까. 혼자 멍 때리며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다.

영어 때문인가. 하루아침에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매일 다른 상황에 부딪히며 해야 할 말을 연습할 수밖에.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말하나 주의 깊게 듣고. 이게 제일 빠르게 배우는 방법인 듯.

초보자의 미숙함을 들킨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은가. 초보자라면 누구나 겪는 단계인데. 처음부터 잘하려는 것은 욕심이고. 그렇지만 나 스스로 미숙하다고 느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걸 많은 이들에게 들키면 더 민망스럽고. 그냥 유쾌하게 넘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듯. 이런 걸로는 일희일비하지 말아야지.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것들. 바쁜데 큰 탈 없이 넘어간 것에 감사할 일인데 나 스스로가 오늘 좀 답답했던 것 같다.

오늘 느낀 이 감정은 소통에서 오는 답답함 때문인 것 같다. 실수해도 바로 말로 정정하면 되고, 오해가 있으면 바로 말로 풀면 되는데 그게 즉각적으로 튀어나오지 않아서. 또한 일하면서 수다를 알아듣지 못하니 낄 수가 없던 것. 결국 영어와 내 소심한 성격이 문제.

테크로 일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별 탈없이 지나간 날이 더 많았고, 오늘 같은 날도 있긴 했다. 일하면서 감정을 너무 배제할 수는 없지만, 조금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루이틀 할 것도 아니고.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일하는 게 처음이기도 해서 그런가 기분이 들쑥날쑥한다. 그냥 오늘은 유난히 사람으로부터 숨고 싶은 날이었다. 앞으로 이런 날이 무수히 많을 텐데. 버티다 보면 무뎌지고 맷집이 생기겠지.

진짜 영어 공부는 해야겠다. 그리고 좀 여유를 갖자.


반응형

댓글